코끼리를 삼킨 사물들 (함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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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린 왕자>의 주인공이 그림을 보여주며 던진 질문에 어른들은 예외 없이 ‘모자’라고 말하지만 어린 왕자는 그 안에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본다. 어른이 사물의 겉모양새를 인식의 근거로 삼는 반면, 어린 왕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 중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런 시선의 차이가 표면 너머를 보게 하고 결국 존재의 깊이에 닿는 사유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저자는 다양한 고찰을 통해 보여준다.

이를테면,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만 존재하는 ‘계단’에서 저자는 높이의 차이가 가지는 심리적인 낙차를 읽어내고 또한 변화 없는 반복이 파생시키는 삶의 권태를 이야기한다. 세계화 시대의 필수품인 ‘비자(visa)’는 타자와 동일자의 구별 짓기를 강화하는 역설적인 제도-사물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여름의 상징이자 백수의 표정을 한 청춘의 신발인 ‘조리’(일명 ‘쪼리’)는 야생과 야만의 문명적인 차이를 표상하는 사물이라는 저자의 직관도 흥미롭다.

저자는 ‘인간의 감각과 교호하는 은밀한 무의식’이라는 차원에서 사물을 추적한다. 그런 점에서 사물이 품고 있는 의미에 대한 저자의 다양한 사색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은밀한 곳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가 낯선 세계의 경이를 펼쳐 보인다. 문명의 도구를 통해 정치와 예술과 인문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을 일상 시간 안에서 꾀하고자 하는 이 책의 시도는 결국 우리가 다른 시선을 가질수록 세상은 더 놀라워진다는 사실을 증언할 것이다.